프로젝트 구상
침대에 누워 지인과 통화를 하던 중 남사친 여사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였다.
연인과 이성친구가 단 둘이 카페에 가도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이 별것도 아닌 이야기를 서로 핏대를 세워가며 한 시간동안 떠들어댔다.
결국 ‘나는 되는데 쟤는 안된다’로 의견이 모였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고 한 시간 동안의 열띤 토론에서 한 가지 가능성을 포착했다는 것이다.
한동안 ‘깻잎 논쟁’ 혹은 ‘이거 상식인가요?’ 같은 부류의 논쟁들이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켰던 것을 기억한다.
중간도 없이 찬반으로 딱 나뉜 채 싸워댔는데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런 논란들은 한번 불이 붙으면 한동안 꺼질 줄을 모르고 타올랐다는 점 역시나.
그 때 깨달았다.
우리들은 항상 참견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그렇다면 남의 일에 ‘참견’하는 재미를 주는 서비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동시에 고민이 있는 사람은 빠르게 반응을 받아 윈윈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아이디어가 문득 떠오른 것이다.
후에 네니오가 될 기획은 이렇게 사람들의 참견 본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한 단순한 구상으로 시작했다.
넥스터즈에서 프로젝트를 소개하다
운 좋게 넥스터즈 21기에 합격한 후 아이디어를 소개할 기회가 주어졌다. 애초에 한 둘이 할 만한 볼륨의 기획이 아니었기 때문에 능력있는 사람들을 모아야 했고 고로 내게 넥스터즈는 굉장히 중요한 기회였던 셈이다.
때문에 최대한 아이디어를 공들여 소개했고 그 결과 21기 진행 프로젝트 10개 중 하나로 선정이 되었다.
몇 번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느낀점은 결국 사람이 답이라는 것이다.
첫 만남에 무엇이든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이 말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회의는 한 주씩 밀리더니 어느새 다음 회의가 기약이 없어진다.
직장인들과 짬을 내서 하는 경우는 더 난감했다. 야근하느라 볼 시간이 없었다는 사람에게 그건 그거고요 라며 채근할 수도 없는 노릇.
결국 레포에 처박혀 ‘출시 예정작'으로써의 역할을 다 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던 참이었다.
때문에 프로젝트가 나아감에 있어서는 태동기의 열정을 끝까지 유지시키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상당히 중요했고 또 그런 가치관을 공유할 사람들을 모아야 했다.
그리하여 나는 내 딴에 사람들을 현혹시킬 만한 키워드를 3개 준비해 강조했다. 바로 시장성, 8주 배포, 트렌디였다.
시장성
세상에 도움이 되겠다는 거창한 포부도 좋지만 나같은 소시민 개발자에게는 ‘유명해지는 것’, ‘잘 팔리는 것’이라는 자본주의적 키워드보다 와닿는 것이 없었다.
‘내 트리를 꾸며줘’와 MBTI의 수많은 베리에이션들이 카톡을 점령하는 것을 보며 요즘 같은 시대에 링크 베이스 바이럴은 맞으면 바로 홈런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이런 면에서 내 아이디어가 한 번 보면 무조건 쓰는 이른바 ‘잘 팔리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이런 면을 기획 소개 때 강조했다.
8주 배포
또한 8주 안에 무조건 배포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사이드 프로젝트를 1년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기약 없음이 주는 사기 저하와 나태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8주 내 배포는 우리는 무조건 배포하는 팀이라는 확신을 주는 동시에 팀원들에게 파이팅을 심어주는 채찍같은 기치였다.
트렌디
나는 감히 내 기획은 숏폼으로써 최-신의 트렌드를 반영한다고 소개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숏폼이라는 키워드는사실 트렌디함을 챙기며 볼륨이 조금 적어도 ‘숏폼인데요?’라고 하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드는 일종의 얍삽이였다.
모름지기 조금만 자동화 되어도 인공지능이고 소통할 수 있으면 메타버스다. 이것도 프로젝트의 있어빌리티를 높이는 꿀팁이라면 꿀팁이겠다.
팀원 드래프트
NBA 드래프트를 방불케하는 팀원 모집이 이어졌는데 내 호소가 먹혔는지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내 프로젝트를 선택해주셨다. 테이블 미팅 때 따로 악수를 청하신 분들도 계셨다.
내가 사람을 고른 기준은 한마디로 프로젝트에 애정을 가질 수 있는지였다.
로켓 사이언스 마냥 고도화된 지식을 요하는 작업이 아니었기에 프로젝트에 애정을 갖고 꾸준히 참여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고 다 떠나서 적어도 도망은 가지 않을 사람들이어야 했다.
그 결과 iOS 한 분, AOS 두 분, 디자이너 두 분, 프론트 한 분, 서버 한 분을 모을 수 있었다.
넥스터즈 첫 회차가 끝나고 팀원들과 함께 회식자리를 갖게 되어 기초적인 구상을 공유했다.
서로 인사이트 공유도 하고 각자 아이디어도 제안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각자 파트에서 맡게 될 역할과 서비스 커버리지, 볼륨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이제 힘차게 나아갈 일만 있다고 생각했다.
프론트가 사라지기 전 까지는.
프론트 대탈출
내가 처음 구상한 마케팅 포인트는 원초적인 재미를 제공하는 콜로세움같은 서비스였다.
“우리 이런 서비스해요~”라는 심심한 소개보다는 “너 이거 보이냐? 열 받지? 참여하고 싶지? 꼬우면 와서 싸워~” 같은 다소 비열한 도발에 가까웠던 것이다.
미리 얘기하자면 이는 나중에 조금 온건한 기획으로 바뀌었다. 팀원들이 중도를 잘 잡아준 덕분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았으면 네니오는 온라인 파이터들의 옥타곤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내 계획대로라면 네니오는 전파력이 상당히 중요한 서비스였다.
그리고 전파력은 앱이 아닌 웹페이지에서 나온다. 아무리 재미있는 서비스라도 앱을 다운받으라고 요청하는 순간 재미가 반의 반감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회식 때 부담없이 이야기 하며 ‘하하 프론트 혼자신데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프론트 분의 흔들리던 눈빛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첫 회식이 있고 3일 후 갑작스레 프론트 개발자께서 불참 소식을 전해오셨다. 프론트 인원이 적은 건 볼륨을 조절하면 되니 큰 문제가 아니었으나 아예 없는 건 심각한 문제였다.
급한대로 여기저기 손을 뻗쳐봤으나 다른 팀에서 귀한 팀원을 빼줄리는 당연히 없고 외부에서 새로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도 애초에 말이 안되는 처사였다.
고민을 이어가던 와중 다행히 서버 개발자님께서 프론트를 간단하게나마 할 수 있다고 해주셨고 그렇게 프론트 스펙아웃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다.